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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안철수 그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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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안철수 그리고 이후

 

 

시계를 돌려 ‘소통’과 ‘힐링’이라는 단어가 난무했던 때로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에 ‘소통’과 ‘힐링’은 일종의 시대 언어였다. 이 두 용어는 지난 10년 이상 동안에 걸쳐 심화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나타난 부정적인 양상들에 대한 집단적인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개혁 성향의 정치 세력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이명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수구보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과정에서 수구보수 정권의 강압성과 권위주의에 대항해 ‘소통’이라는 가치가 부상했다. 또 정치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심화되고 있는 삶의 불안정성과 좌절 등에 직면해 광범위한 ‘힐링’ 어휘들이 확산되었다. ‘소통’이나 ‘힐링’이라는 어휘는 무엇인가 답답하고, 상처입고, 고통을 겪고 있으며, 불안하거나 우울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을 재빠르게 반영하거나 오히려 현실을 만들어 내는 미디어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의 힐링 담론이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었고 서점가에서는 힐링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회학자, 심리학자, 언론학자, 문화학자 등 학계에서도 힐링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분주했다. 정치인들이야 두말 하면 잔소리다. 정치인들은 ‘소통’과 ‘힐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특히 이명박근혜 정권에 대항하는 정치인들이 수구보수 정권을 향해 그토록 간절하게도 ‘소통과 공감 정치’를 요구했을 정도이다.

 

 

바로 이때 안철수가 정치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정치인들이 대중의 마음을 다독이고 격려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라고 속삭이는 심리적 치유자를 자처했던 ‘힐링 정치’의 대표 주자가 바로 안철수였다. 물론 안철수가 처음부터 ‘힐링 정치’의 전략을 가지고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또 안철수를 정치인으로 만들고 싶었던 기획 집단이 움직인 것인지 우연의 산물인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안철수는 분명 ‘힐링 정치’ 무대의 주인공이자 격한 반응을 유발해낸 상품이었다.

 

 

힐링의 상호작용이 정치를 매개하는 핵심적인 힘이 되었다. 대중에게 호응받는 정치인은 부모와 아이가 맺는 부성․모성적 보살핌의 관계에 위치해야 했다. 사람들은 정치인의 정치 철학과 비전, 사상과 정책 보다는 심리적 치유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했다.

 

 

개혁진보의 힐링 정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선거에서 계속되는 수구보수 정당의 승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 중 한명이었던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낙선,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속, 개혁진보 정치의 상징적인 인물들의 정치적 실패와 주변부화 등 지난 10여년 이상의 정치적 상황은 개혁진보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 집단적인 좌절과 분노, 무력감과 당혹감 등 매우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형성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개혁진보 진영의 정치인, 지식인, 유명인사 그리고 대중 사이에 힐링을 매개로 한 정치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졌다. 계속되는 정치적 실패 속에서 동일한 정치 지향성을 가진 집단이 자신들의 정치적 기대와 행동이 좌절되었을 때 ‘정서적 공동체’의 복원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이다. 그리고 개혁진보 진영의 힐링 정치, 정치의 힐링화 또한 동일한 정치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의 정서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힐링화 혹은 ‘힐링 정치’는 개혁진보 정치를 퇴행시켰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힐링 정치가 잠시 동안의 위로를 줄 수 있고, ‘함께 함’의 정서들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극히 개별화된 자기 위로의 효과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며 모욕을 당하거나 배제와 고립을 당하는 상황에서 ‘힐링 정치’는 심리적 보상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개혁진보정치의 힐링화 혹은 ‘힐링 진보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잠정적인 추측을 해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의 물결과 (일시적인) 개혁진보의 재집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는 힐링의 메시지와 정서들을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용산사태, 강정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장기 투쟁과 희망버스, (재)개발의 폭력과 주민들의 축출, 총선과 대선에서의 연속적인 패배 등의 큰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개혁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감정적인 것’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슬프고’, ‘짜증나고’, ‘화나고’, ‘증오스럽고’, ‘기가 막히고’와 같은 감정들을 처리하고 해소하려는 움직임들이 개혁진보정치의 과제처럼 부상했다. 서로 위로하고, 함께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고 웃어주며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위로와 치유의 정치’가 힘을 발휘했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소위 개혁진보정치적 가치에 동의하는 언론이나 인터넷, SNS상의 대화들도 ‘힐링 정치’의 가속화에 기여했다. 사람들은 일종의 정서 공동체 내부에서 정치를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뿐 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신자유주의와 같은 정치경제적 현실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 압박감, 무력감 등을 새로운 ‘힐러'를 통해 완화시키거나 회피 혹은 해소하고자 했다. 힐링이 매개하는 정치와 사회적 담론들이 부상하고 새로운 힐러들이 출현했다. 이중에서 정치적 힐러는 영웅적 요소를 갖추고 사람들의 정서와 감정을 재조직화함으로써 리더로서 부상했다. 안철수를 포함해 어느 때는 박원순에게서, 어느 때는 진보적인 종교 지도자에게서, 어느 때는 진보적인 학자나 예술가에게서, 어느 때는 진보적인 대중스타에게서, 어느 때는 전혀 자본가처럼 느껴지지 않는 진보적 기업인에게서 ‘힐링’의 향취를 느끼고자 했다.

 

 

2012년 대선에서의 문재인 패배 이후 사람들은 또 한번 힐링을 필요로 했다. 총체적 ‘멘붕’과 ‘마붕(마음의 붕괴)’ 속에서 힐러를 찾았다. 또 사람들은 유시민, 노회찬 등의 개혁진보 힐러들을 찾으며 상처와 좌절감을 달래고 위안을 삼았으며, 안철수는 또 다른 정치 힐러의 정상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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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되짚기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 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저는 정치 경험 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 정치 경험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

 

안철수가 2012년 대통령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영웅적 정서를 담은 이 출마의 변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발표를 듣는 순간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고 있던 한 여성은 “안 원장은 세상을 움직이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어떤 남성은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12년 9월 19일).

 

 

안철수의 출마는 “도도한 시대정신의 반영....안 원장이 이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과 과제를 떠안은”(한겨레신문, 2012년 9월 19일, 사설)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대선 출마는 “(자생적 여론이 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사에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실험”이며, 따라서 “시대정신을 구현함에 모자람이 있어선 안될 것이다.”(경향신문, 2012년 9월 19일, 사설) 이 당시 개혁진보 언론의 흥분은 출판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김보협과 김외현 등이 지은 『안철수를 읽는다』나 이건범이 지은 『안철수가 이길 수 있다』와 같은 책이 출판되고 언론에서는 이 책의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안철수는 엄청안 정치적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다.

 

심리학자 이경희는 『안철수의 착한 분노』(2012)를 통해 안철수가 어떻게,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지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이 책에서 안철수는 “이제껏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한 유형의 인물이며, 정치역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우도 아닌” 사람이다. 안철수는 ‘겸손함’, ‘솔직함’, ‘진정성’을 갖춘 ‘성숙한 평화주의자’이며, ‘건강한 성취자’이다.

 

“보통 때에는 수줍음과 고요함으로 자신과 주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며, 동시에 필요할 때면 그 어떤 열정적인 사람보다도 적극적으로 성취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이경희, 2012, 41쪽)

 

 

“2011년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러한 자기 진화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안철수의 행보를 두고 ‘깜짝 등장’이라고 했지만 사실 본인에게 있어서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략) 본래 그는 평화주의자이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익’이란 가치관에 헌신하며 점차 성취하는 사람으로 진화한 결과, 평화에 대한 위협을 감수하고서라도 적극적인 발언과 행보에 나서게 됐던 것이다.”(같은 책, 44쪽)

 

 

이경희에 따르면, 안철수는 변화시키고 싶은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착한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분노는 철저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잘못된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공적인 분노에서 유발된다. 그래서 “2008년부터 일했던 카이스트에서 201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옮긴 것 역시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공적인 분노가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2012, 67쪽) 안철수의 출마는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생각 하에 결정된 것이고,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 집권세력”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공적인 분노, 의로운 분노가 된다(같은 책, 76쪽). 안철수에 대한 분석의 결과들은 결국 안철수가 분열된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 최선의 대안이며, 안철수는 이를 위한 충분한 인격, 경험, 사고, 철학, 심리를 가진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분조건들은 안철수를 지지하는 집단에 대한 분석 결과들을 통해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지지된다.

 

 

‘서울에 사는 30대 고소득 직장인’은 소위 안철수 지지층의 전형이라고 분석된 집단이다. 또 ‘대학 졸업한 사무기술직’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득이 높을수록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높았고, 오히려 저소득층의 지지는 박근혜보다 낮았다. 안철수의 지지자의 약 30%는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이었고, 월 소득 400만원 이상을 합치면 이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 안철수를 지지했다(한겨레신문, 2012년 9월 24일). 이런 대중적인 지지에 대해 “대중은 안철수에게서 상식의 승리, 상식의 성공 가능성을 보며 거기에 자신을 투사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거짓말하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도 성공하고 싶다. 내가 열심히 한 만큼 성취를 약속받는 사회에 살고 싶다. 나의 성공의 힘으로 어려운 타인에게 베푸는 사람이고 싶다는 열망과 비전을 창출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항변이 안철수라는 한 개인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표출되지 않았겠는가?”라고 『안철수가 이길 수 있다』의 저자 이건범은 분석한다.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편집국장)은 시를 읖조리며 기도하듯이 말한다.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 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그는 김용택 시인의 <세상의 길가>에서 시작해 안철수를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고, “가장 아픈 곳에 시선이 머무는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암시한다. 출마 선언 후 40일이 지났을 때 안철수는 또 한번 말한다.

 

 

“제가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고 하고 벌써 40여일이 지났습니다....정치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하는 것이고 이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그날까지 여러분만 바라보며 그 길을 걷겠습니다.”(오마이뉴스, 2012년 10월 29일)

 

그러던 그가 2012년 11월 23일 돌연 후보 사퇴 회견을 했다.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재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 달라.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졌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덧붙였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새 정치에 어긋나고 국민에게 더 많은 상처를 드릴 뿐입니다. 저는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안철수 후보의 목소리는 떨렸고 표정은 비장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말하면서 애써 울먹임을 참았지만, 흔들리는 목소리는 점점 짙어졌다. 한마디 한마디 마다 사이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회견장 곳곳에선 ‘안 됩니다. 절대 안됩니다’라는 단말마의 외침도 터져나왔다>”(2012년 11월 23일)

 

한겨레신문은 “순간 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몇몇 캠프 관계자들은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지켜보던 기자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 지지자는 ‘안됩니다!’라고 외쳤다.”(2012년 11월 23일)고 보도했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를 중재했던 소설가 황석영 등의 인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안철수 후보에게 경의와 깊은 사의를 드리고자 한다. ‘안철수의 약속’에 대해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배우 유아인이 분노를 터뜨렸다. “아름다운 단일화 같은 소리 하네. 안철수 비난한 것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만족스럽냐. 권력을 내려놓지 않은 것은 야권 또한 마찬가지다. 신물나게 싸워 봐라. 목적을 상실한 권력, 근본을 상실한 권력,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권력을 휘두르며”라고. 김제동은 덧붙였다. “살면서요. 당구 치다가요. 멍하니 텔레비전 본 것도 처음이구요. 울컥한 것도 처음이구요. 많이 외로웠을 건데 싶었구요. 낙엽이 땅을 데워 봄꽃을 만든다네요. 되게 유치한 말이다 싶었는데 이제야 좀 알겠네요. 봄 길을 연 그 마음. 잊지 않고 꽃 피울게요.” 김여진은 어떠했나? 그녀는 “기시감. 시장 선거, 윤여준 전 장관의 발언에 온통 난리치던 타임라인. 박원순 시장님께 양보 후에 감동. 대선까지 그를 내몬 게 그때 그 감동이었는데, 오늘의 사퇴는 그때보다 훨씬 더 미안하다. 그가 안 나섰다면 애당초 질 싸움이었다”고 안철수와 대중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작곡가 김형석은 “안철수 후보는 이제 온 국민의 진정한 멘토가 되었다. 그는 진정으로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 되기를 염원하고 또 염원했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떠받친다.

 

 

“예외적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안철수 사퇴의 배경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권력에 대한 사욕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미묘한 문제이다. 안철수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에 사욕이 강했다면 이렇게 극적으로 후보직을 사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략) (문재인 안철수) 둘 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강제호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이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목적은 사익을 탐하기 위함이 아니거나 혹은 그럴 의도가 지극히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중략) 권력에 대한 사욕이 없는 사람이 정치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는 수 많은 고민과 갈등 때문에 속 시원한 행보를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중략) 보기에 따라서는 사심없는 순수함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장면을, 세인들은 권력의지가 부족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중략) 안철수가 전격적으로 후보직을 사퇴한 것은 국민들이 안철수를 통해 품었던 희망과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후보직을 내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략)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2012년 안철수의 사퇴에 의한 야권후보단일화는 민주진보세력에게 87년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치유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중략) 미완의 단일화를 완성된 역사 치유와 정치 혁명으로 바꾸는 것은 안철수는 물론이고 특히 문재인과 민주당, 그리고 그들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도 큰 숙제로 남게 되었다. (중략) 꼭 10년 전에는 노무현의 눈물이 세상을 바꾸었다. 겸연쩍게 손으로 훔치던 그의 작은 눈물방울은 이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바다를 만들었다.”(오마이뉴스, 2012년 11월 26일)

 

 

안철수는 사퇴했고, 문재인의 지지율은 오르기 시작했다. 박근혜 후보와 큰 격차를 보이던 지지율은 투표일을 앞두고 승패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초박빙세를 보였다. 사람들은 문재인 후보의 승리를 점치기도 했고, 투표 당일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메시지들이 온라인과 SNS를 통해 전파되었다. 하지만 그는 패배했다. 안철수는 투표 당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어떤 결과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와 함께. 또 그는 말했다. “국민에게는 승자와 패자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입니다. 주인에게는 승패가 없습니다. 선거에서 이긴 쪽은 패자를 감싸고 포용하고, 진 쪽은 결과에 승복하고 새 정부에 협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바라는 마음이다.”

 

선거 패배 후 개혁진보 진영은 또 다시 ‘마음 토탈 케어’와 ‘토탈 힐링’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자신의 ‘멘붕’ 상태, 그중에서도 최악의 멘붕 상태를 드러낼 수 있는 사진과 글들이 쏟아졌다. 다시 한번 상처입고 좌절한 개혁진보정치를 보호한 것은 위로와 힐링의 말이었다. 우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개혁진보의 재구성을 외치는 목소리들은 힐링의 언어 속에 묻혀야 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은 201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으로 알려졌던 20-30대는 안철수 현상을 통해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고, 투표를 통해 그 갈망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열망이 강렬했기에 좌절의 아픔도 그만큼 깊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진 낙엽은 뿌리를 튼튼히 하는 거름이 된다. 좌절의 아픔을 새 정치에 대한 더 큰 책임감으로 승화시킨다면 아픔의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터 오를 수 있다.”(2012년 12월 31일 사설)

 

 

아듀!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

 

 

안철수는 영웅이 되어야 했다. 새로운 희망을 걸 수 있었고 과거를 뒤엎고 지금과는 전혀 새로운 정치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정치적 영웅으로 이야기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영웅적 언사들로 이 기대에 응답했다. ‘당신들이 불러서 여기 왔고, 당신들의 소망을 내가 실현하겠다’ 식의 정치적 수사로 자신을 영웅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그는 계속해서 ‘대중의 호출’에 응답하고 불려나가 그 대중들로부터 주어지는 명령을 실행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내세웠다.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 영웅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장벽들 앞에서 비장하게 외쳤고 그들이 노는 물에서 빠져 나오고자 했다. 그의 패배는 항상 ‘양보’와 ‘희생’으로 표현되어져야 했다. 영웅은 스스로 거대한 장벽 앞에서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비극의 서사를 되풀이 해야 했다. 그는 대중들의 공분과 동정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안철수를 좌절시킨 개혁진보정치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들은 박근혜를 선택하거나 문재인을 선택하거나 투표를 포기했다. 그리고 안철수는 잠시 사라졌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되었다 다시 탈당해 국민의당을 만들어 2017년 대선에 출마해 3위에 그쳤으며 경쟁자 문재인을 이기기 위해 벌인 조작극 앞에서 정계은퇴의 압력을 받고 있다.

 

 

안철수 신화는 사실 그의 정치적 레토릭의 효과와 함께 안철수를 새로운 정치적 영웅이자 좌절당한 사람들의 치유자로서 끊임없이 위치시켰던 언론과 개혁진보 진영의 학자, 수 많은 정치 평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사실 그의 핵심 지지자들은 고소득 사무직과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그리고 안철수 스스로 자신을 규정했듯이 그는 보수주의자다. 안철수는 결코 개혁진보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보수우파의 공적영역에서 성공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터인지 문화적 힐러이자 영웅처럼 부상했고, 사람들은 이에 열광했다. 그의 다정다감하고 포용적인 표정과 언어, 유연한 생각들이 새로운 정치를 창조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의 15년 이상 거의 변화하지 않고 유지되는 굳건한 권력구조와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진정 맞설 수 있는 사람으로 안철수를 위치시켰다. 이렇게 보수우파 정치인 안철수는 패배한 야권과 개혁진보정치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박권일은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안철수 현상의 기층에 있는 것이 개혁의 당위라기보다 ‘힐링(치유)’의 열망이라고 말했다. 이 열망은 분명 진보적 정서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힐링 열풍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피로감과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만들어낸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정서이다. 그래서 제18대 대선은 좌우파 이념 전쟁이 아니라 ‘감수성’ 전쟁이었다. 누가 힐링하고 안정시킬 수 있는가, 누가 그 감수성을 더 잘 전달하는가의 싸움이었다(박권일, 2012년 12월 31일 한겨레신문). 박권일의 해석은 그 어떤 다른 해석보다 정확하고 날카롭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개혁진보 진영의 패배, 무력감, 좌절감, 불안감 등 복합적인 정서들은 매우 퇴행적인 과정에서 결국 위로자와 치유자를 찾아내는 ‘힐링 정치’로 이동했다. 특히 인터넷과 SNS상의 개혁진보 진영의 담론들은 정치적 상처 앞에서 함께 분노하고, 함께 슬퍼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힐링의 상호작용’을 광범위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장 결정적인 정치적 국면에서 자신의 분노와 상처, 좌절감과 패배감,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다독거려주는 사건이나 대상, 인물이나 생각에 과도한 감정적 집착을 보여주었다. 개혁진보 진영은 늘상 이같은 정서의 공동체, 감정의 정치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에 대한 위로와 치유의 의식들을 심화시켰다. 언론보도와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인터넷과 SNS 상에서 이같은 힐링의 정치에 참여했다.

 

 

안철수는 ‘안철수 이야기들’에 의해 상징적으로 구성되어 소비되는 대표적인 정치인 중에 한 명이었다. 즉 그는 이야기 속 인물이며, 상상적으로 상징화된 인물이다. 특히 안철수는 갈등과 대립, 분열의 치유자로 상상되고 이야기된다. 그리고 안철수를 통해 통합과 화해, 대립의 해소라는 정치적 과제가 개혁진보정치를 이끄는 최고의 가치로 부상했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를 소통과 화해, 통합과 중도라는 가치 속에서 표현되고 실행되도록 강제했다. 자신이 특정한 계급적 이해관계, 특히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자본가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이러한 이해관계의 외부에 위치하는 존재로서 말해짐과 동시에 탈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은 오히려 정치의 부재를 재촉했다.

 

 

서동진의 비판처럼 안철수 현상은 정치가 대표해야 할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안철수는 정치는 ‘누군가의, 무엇인가를’ 대표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닌 어떤 것도 정박되지 않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말하는 정치를 생산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는 “대표의 정치를 표류시키는 과정”이자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상징화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는” 것이다(서동진의 글). 그래서인지 안철수는 그 누구도 대표하지 않으려 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대표하려는 정치적 입장과 담론들을 생산하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정치, 행하고자 하는 정치에 대해 진정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말하고 주장하지만, 그의 정치는 부지런히 움직임으로써 중단되지 않는 ‘목적없는 운동’, ‘주체없는 과정’일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적 경계를 희미하게 하고 해체하며, 명확한 정치적 정체성의 구성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고자 했다. 정치가 중층적인 대립과 갈등의 지점에서 뚜렷한 정치적 정체성과 대표성을 가지고 구성되는 것이 아닌 이 자체를 비난하고 배제함으로써 기존의 정치적 질서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했다.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은 개혁진보 정치 노선과 이념 및 정책적 지향성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여․야/보수․진보의 대립 자체를 정치의 실패로 규정하며 정치의 공간을 오히려 빈 공백으로 만들어버리고 여기에 ‘새롭다’고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진입할 수 있는 ‘빈 기표’로서의 정치 공간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의 중도노선이나 여-야, 보수-진보의 정치적 대립 자체를 반(反)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세대주의를 내세우는 안철수 현상 앞에서 개혁진보정치가 얼마나 주저하고 당혹해 했는가? 그런데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에 작별을 고할 시간에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안철수 이후, 국민의당의 몰락이라는 귀결점

 

 

안철수는 텔레비전 토크쇼와 전국적인 ‘북 콘서트’ 등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욕망해야 하며,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자기의 삶의 가치들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의 성공은 정확히 심리적 치유자로서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응답이라는 관계에 기초한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를 보살핌과 위로, 치유와 마음 다스리기 등과 같은 차원에서 구성되는 문화적 매개체로 기능하도록 했다. 대중에게 어필하고 성공하고 싶어 했던 정치인들은 더욱 더 공세적으로 미디어에 의존하고 자신을 이러 저러한 치유자로 위치시키길 원했다. 한국 사회의 병적인 징후들(신자유주의 체제, 노동의 불안정성, 실업률 증가, 자살률 증가, 위험의 일상화 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치는 오히려 사회의 문제들을 야기하는 원인의 진단과 이에 대한 개혁 방안을 놓고 벌이는 여-야, 보수-진보, 우파-좌파의 대립이 아닌 관용, 다양성, 돌봄, 배려, 용기, 희망, 혁신, 계발, 공동체 등의 윤리적 용어들로 대체되었다. 안철수는 그동안 한국의 현대 정치 지형에서 만들어진 개혁진보적인 결과물에 대해서 중도주의를 내세워 부정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국회의원 정원 축소,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승계 배제, 경제민주화에 대한 퇴보적 입장, 교과서 논쟁에서의 양비론적 태도의 견지 등 그가 보인 대부분의 정치적인 선택과 입장은 보수 정치 집단과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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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안철수와 호남의 보수화된 정치인들의 결합체인 국민의당을 그리 지지하지 않는다. 선거 조작 사건에 대한 분노도 분노지만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보수 정치의 한 축임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안철수와 함께 호남의 보수 정치인들의 몰락이 진행될 것이다.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으로 2017년 대선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안철수와 호남의 보수 정치인들의 시간은 더 이상 지속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이는 다시 한번 개혁진보정치를 튼튼하게 세워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영주(양평민주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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